이번 시간에는 삼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한의 성립과 사회 모습
기원전 3~2세기경에 한반도 중. 남부에는 여러 소국이 완만하게 연맹한 진국이 존재하였다.
진국은 중국의 한나라와 교역을 시도하다가 위만조선의 방해를 받기도 하였다. 위만조선 멸망 후에 철기를 소유한 고조선 사람들이 대거 남으로 이주하면서 진국 사회는 마한과 변한, 진한으로 나누어졌다.
마한은 한강 이남 서부 지역에 위치한 50여 소국으로 구성되었고, 큰 나라는 1만 여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합하여 10여 만 호였다. 진한과 변한 은 각기 경상도 지역의 12개 소국으로 구성되었는데, 큰 나라는 4~5천 호 작은 나라는 6~7백 호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합하여 4~5만 호였다.
삼한 소국 가운데 충남 지역에 위치한 마한 목지국의 세력이 가장 커서, 그 나라의 진왕이 삼한 전체를 대표하여 중국과 교류하였다. 삼한 소국과 읍락은 신지와 견지, 읍차, 부례 하고 불리는 지배자들이 각기 다스렸다.
삼한에서는 일찍부터 벼농사가 발달하였다. 해마다 5월이면 씨를 뿌리고 귀신에게 제사 지냈는데, 이때 떼를 지어 밤낮으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 마시고 놀았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국읍마다 천군을 두어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고, 또 신성한 곳인 소도를 두어 귀신에게 제사 지냈는데, 이곳은 죄지은 사람이 도망쳐 와도 잡으러 들어갈 수 없었다. 천군의 존재를 통하여 삼한 사회는 제정이 분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변한에서는 철이 많이 나와 낙랑과 왜, 동예 등지에 수출하였다. 어린 아기가 태어나면 곡 돌로 눌러서 납작하게 만드는 편두의 풍습이 있었고,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도두 양보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목지국이 마한을 대표하였으나, 3세기 후반에 백제국이 성장하여 목지국을 누르고 마한의 대표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진한과 변한의 대표 세력은 경주의 사로국과 김해의 구야국이었다. 이들은 뒷날 신라와 금관가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이번 시간에는 삼한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구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