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신석기시대의 사회와 생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2019/06/05 - [분류 전체보기] - 한국사의 시작

2019/06/06 - [분류 전체보기] - 구석기시대

 

약 1만 2천 년 전쯤에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지구의 환경이 오늘날과 비슷해졌다.

 

서울 암사동 움집 (네이버)

 

사람들은 이 무렵부터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토기를 사용했는데, 이때부터를 신석기시대라고 부른다.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기온이 상승하면서 식물 채집이 증가하고 사냥과 어로 활동이 활발해졌다. 사람들은 늘어난 식량을 효과적으로 운반하거나 저장하기 위해, 또는 음식을 끓여 먹기 위하여 토기를 발명하였다.

 

제주 한경 고산리에서는 1만 년 전에 제작한 토기와 석기가 발견되었다. 육지에서는 양양 오산리에서 발견된 덧무늬토기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신석 기기 시대 초기에 이른 민무늬와 덧무늬, 눌러 찍기 무늬 토기를 만들었고, 중기와 후기에 밑이 뾰족하거나 납작한 모양으로 크기가 다양한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신석기시대 중기인 약 5,500년 전 무렵부터 농경과 가축의 사육이 시작되었다. 신석기시대 후기에는 생산 경제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긴 했지만, 당시까지도 여전히 채집과 사냥, 고기잡이가 경제생활의 중심을 이루었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바닷가나 강가에 살며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조개류를 채취하여 먹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강가와 바닷가에서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동삼동, 서울 암사동을 들 수 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석기를 갈아 화살이나 창 등을 만들어 짐승을 사냥하였다. 석기와 뼈 등을 조합하여 만든 낚시, 돌과 뼈로 만든 작살, 그물 등으로 물고기를 잡았고, 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실을 뽑고 옷을 지어 입었다. 농경의 시작 이후 간석기로 괭이, 보습, 낫 등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었으며, 식량 가공 도구로서 갈돌과 갈판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정착생활을 시작하였다. 땅을 파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움집을 지어 살았다. 지금까지 발견된 규모로 보아 4~5명 정도가 한 가족을 이루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시대 후기에 정착생활로 인구가 늘어나자 같은 핏줄의 씨족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몇 개의 씨족이 부족을 이루었으며 같은 씨족끼리는 혼인하지 않았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씨족이나 부족 단위로 공동으로 식량을 채집하거나 생산하고 분배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였으며, 연장자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공동체를 이끌었다. 씨족공동체에서 여성이 토기를 만들고 농사를 짓거나, 또는 옷을 만드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신석기시대를 `모계 씨족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번 시간에 신석기시대의 사회와 생활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신석기시대의 종교와 신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당장 공유하세요!!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카스
Posted by 가멜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