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성립과 성장
2019/06/07 - [분류 전체보기] - 신석기시대
기원전 1세기 이후 삼국은 고조선의 외곽 지역에서 중국 군현의 직. 간접적인 지배에 저항하고 중국의 선진문물을 수용하며 성립하였다.
기원전 4~3세기에 중국 랴오닝성 환런의 훈강과 압록강 중류 유역에서 `나`라고 불리는 작은 정치 집단들이 등장했고, 기원전 75년경 고구려인이 중국의 현도군을 공격하여 승리하고 소노 집단을 중심으로 고구려라고 불리는 연맹체 국가를 이루었다.
얼마 후에 부여에서 이주한 주몽이 오늘날 중국 랴오닝성 환런에 해당하는 졸본 지역에서 계루 집단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기원전 37년 무렵에 소노 집단을 밀어내고 고구려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삼국사기]에서는 마치 이때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것처럼 기술하였다.
기원후 1세기경 태조왕은 동해안의 동옥저를 정복하여 복속시키고 주변의 작은 나라를 정벌하였다. 또한 중국의 요동군과 현도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으며, 도읍을 지안의 국내성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태조왕 때는 대외 정복을 활발하게 추진한 결과 전쟁포로의 획득, 약탈한 물자의 증대, 지방 복속 집단이 바치는 공납 물의 증가 등으로 고구려의 국력이 크게 신장하였다.
3세기 무렵 신상왕 때 왕권이 한층 강화되어 왕위 계승이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바뀌었고, 4세기 무렵 계루부와 비류나부 등 5부가 연합한 연명체 국가에서 중앙집권적인 고대국가로 발전하였다.
240년대에 위나라 장수 관구검의 침략을 받아 고구려는 한때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곧바로 국력을 회복하였다. 4세기를 전후하여 중국의 서진이 왕위 계승 분쟁과 흉노. 선비. 갈. 저. 강족 등 다섯 북방민족의 침력으로 혼란에 빠지자 고구려 미천왕이 313년에 평양에 위치한 낙랑군을, 그 이듬해에 황해도에 위치한 대방군을 잇따라 공격하여 병합하고, 요동 진출을 꾀하였다.
이렇게 이번 시간에는 고구려의 건국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백제,신라 가야의 건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